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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삶의 뭣만한 일부

한국에서 떨쟁이가 만든 앨범은 있었어도, 떨 앨범은 없었다 - 빌스택스 [DETOX] 리뷰

 대부분의 국가 혹은 지역에서 오락용 대마초 흡연 및 소지는 불법이지만, 한국은 그중에서도 대마초를 금기시하는 경향이 강한 나라 중 하나다. 올해 초 교환학생을 가서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중 빠지지 않는 주제가 대마였다. 각자 자기 나라의 대마 관련 문화나 음악을 소개했고 나는 당연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저 한국에서 대마가 얼마나 금기시되어있고, 심각하게 여기는 범죄인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2020년 4월, 한국의 첫 캐니버스(Cannibus) 앨범, 빌스택스의 [DETOX]가 발매되었고, 난 신나서 친구들한테 이 소식을 알렸다. 한국에도 드디어 대마를 주제로 한 앨범이 나왔다고.

 

속보! 속보!

 빌스택스는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제는 나이도 많은 래퍼다. 그중에서도 대중들에게 가장 따가운 관심을 받은 것은 아마도 대마초 관련 이슈일 것이다. 흡연 사실이 적발된 후 그는 대마 합법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자신의 음악 활동에도 이러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그 결과가 [DETOX]고, 대마가 잔뜩 쌓인 앨범 커버만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대마로 가득 차있다.

 

[DETOX] 앨범 커버

 음악적으로 빌스택스라는 인물을 보자면, 여러 논란 속에서도 묵묵하게 자신의 음악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이어 온 아티스트다. 많은 팬들이 그에게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다', '나이에 비해 트렌디하다'라는 평을 내리는데 나는 이러한 평이 그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년 가까이 음악을 하면서 많은 스타일의 변화가 있었지만, 어떠한 음악에서도 그는 자기가 가진 매력을 잘 살린다. 엄청나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엄청나게 자극적으로 뱉는다.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는데 굳이 표현하자면 맛을 참 잘 살린다. 그의 본질은 트렌디함이 아니라 어떤 트렌드에서도 자신의 맛을 잘 살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극의 원천이 화려함이 아니기 때문에 앨범 단위로 들어도 피로하지 않고,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자극을 준다. [DETOX]에서도 이러한 능력이 빛을 발한다. 

 

 

대충 이렇게 다르다고 한다.

 대마의 두 종류에서 컨셉을 딴 앨범은 Sativa (Side A)와 Indica (Side B), 이렇게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머리의 하이(high)를 주는 것으로 알려진 Sativa 종의 특성에 맞게 앨범의 전반부(Side A)에는 빡센 노래들이 주를 이룬다. 확고한 컨셉이나 주제를 잡고 만든 앨범은 자칫 잘못하면 뻔하고,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주제가 아무리 자극적이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빌스택스는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다채로운 표현을 통해 초반부의 신선함을 유지했다. 대마를 초록색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와사비에 비유한 트랙 'WASABI', 대마 거래에 쓰이는 어플을 외치며 다른 한국 래퍼들과 자신을 구분하는 트랙 'Wicker me', 대마를 펴서 높은 상태인 것을 축지법 쓰시는 분에 비유한 트랙 '허경영' 등. 대마와 대마초를 핀 자신을 최대한 다양하게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들이 기존에 흔히 사용되는 현지의 대마 은어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어떻게 잊어 처음 연기를 맛 봤을 때
초밥에 wasabi 넣은 맛을 알았을 땐
No turning back, 전부 중독될 꺼 하나 둘 셋

- WASABI 中

 

한국에서 펴 한국께 아닌걸
우린 그냥 뿌리부터 다른 거
THC 내 머리에
내 머리카락 말아 펴도 너흰 헤롱해

- 한국거가 아닌거 中

 

 전반부의 피쳐링진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이다. 피쳐링진 개개인의 활약 여부를 떠나서 대마 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는 래퍼들을 유명세와 상관없이 전반부에 적극적으로 포진시킨 게 앨범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만드는 데는 유효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빌스택스 본인이 주도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한국어 랩이 풍기는 떨쟁이의 분위기는 신선하다.

 

 후반부(Side B) Indica에는 덜 빡세고, 비교적 정서적인 곡들이 수록되어있다. Indica는 몸의 하이, 즉 몸이 안정되도록 만드는 종이다. 전반부가 친구들과 함께 파티에서 대마초를 피며 빡세게 노는 느낌이라면, 후반부는 혼자 피며 깊은 사색에 빠진 느낌이다. 이는 'Lonely stoner'에서 잘 느껴진다. 음울한 비트에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의 가사를 오마주한 도입부부터 시작해서 곡 내내 떨쟁이의 고독함을 뿜어낸다. 혼자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의 필요성 대해 얘기한다. 이 트랙에 피쳐링으로 참여한 라콘과 염따 모두 전반부의 피쳐링진과 다르게 대마 정서와는 무관하지만,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는 특화된 래퍼들이다. 발매 당시 염따의 선풍적인 인기까지 고려했을 때 대중적으로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했다. 혼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은 대마초를 안 피더라도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니깐 말이다.

 

'Lonely stoner' MV

 후반부에 빌스택스가 만든 감정선은 11번째 트랙, 'Price tag'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노래에서 나는 지난날의 파티들을 회상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자가격리 중 앨범을 들은 나에게는 가장 와 닿는 트랙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움이 묻어있고,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단호함도 묻어있다. 앨범의 클라이맥스 역할을 잘 수행한 곡으로 베스트 트랙으로 꼽고 싶다. 후반부의 빌스택스가 드러낸 다양한 정서와 감정은 대마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보다 넓은 것이었고, 그게 이 앨범이 가진 가치라고 생각한다.

 

Rest in peace 황탁이 miss you bruh
가면 말아줄께 제일 굵은거

- Price tag 中

 

 대마라는 하나의 주제로 12곡짜리 유기성 있는, 지루하지 않은 앨범을 만들었다. 훌륭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첫 번째 캐니버스 앨범이라는 상징성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평에 '힙합은 역시 대마지'하는 '힙-합' 가산점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싶다. 나는 이 앨범을 여러 번 돌리면서, 빌스택스가 이런 류의 앨범을 만든 첫 번째 인물이라는 사실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극적인 주제인만큼 충분히 구린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는 주제기 때문이다. 이 앨범을 듣는다고 대마를 피는 것도, 혹은 피고 싶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합법화를 지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니깐 걱정 말고 다들 한 번씩 들어보자. 

 

 

 

  이 앨범이 기존의 대마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기능을 한다면 대단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대마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논의가 필요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불법인 건 불법인 거야'라는 논리에서는 벗어나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오락용 대마가 합법화될 확률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조금도 알아보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모습은, 비단 이 주제에서만 나타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