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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삶의 뭣만한 일부

맥 밀러가 내게 남기고 간것 (2) - [Circles] 리뷰

맥 밀러가 내게 남기고 간것 (1) - [Swimming] 리뷰

 

 

 2018년, 맥 밀러의 안타까운 사망으로 [Swimming]은 그의 생전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2020년 1월에 발매된 그의 사후 앨범 [Circles]는 나를 포함한 많은 팬들이 그의 마지막을 [Swimming]으로만 기억하지 않게 하는 의미 있는 앨범이었다. 이 두 앨범은 'Swimming in Circles'라는 기획에 맞게 같은 시기에 동시에 준비한 앨범들이었다. 안타깝게도 [Circles]를 그가 직접 마무리할 수는 없었지만, 생전에 그의 계획에 포함된 앨범이었기 때문에 그 어떤 사후 앨범보다 아티스트의 온기가 진하게 남아있다. 

 

[Circles] 앨범 커버

 

 앞선 리뷰에서 맥 밀러가 말하는 'Swimming'이 슬픔 및 고통을 대하는 방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Circles] 발매로 'Swimming in Circles (원을 그리며 수영)'라는 메시지가 완성되면서 맥 밀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원을 그린다는 것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즉, 출발점이 도착점이 되는 것이고, 출발점에서 출발해서 다시 출발점에 도착하는 것이 반복되면 출발점과 도착점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맥 밀러가 말한 수영은 어딘가에서 출발해서 도착하는 목표가 있는 행위가 아니라 그냥 힘겨운 삶을 대하는 것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목적은 있지만 목표는 없다.

 

I just end up right at the start of the line, drawin' circles, mhm

결국 한 바퀴 돌아 모든 걸 시작했던 그 자리에 서 있어

- Circles 中

 

Circles 뮤비 중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느끼는 삶은, 또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원보다는 직선에 가깝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목표를 성취하기를 요구받는다. 인간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행복을 얻기 때문에 목표를 추구하지 않는 삶이 더 어색한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다만, 이러한 목표가 전부가 되어버린 삶은 허무하기도 하다. 살면서 느끼는 허무함, 현자타임의 시기는 그 강도와 상관없이 누구나 피해 가기 힘들다. 맥 밀러가 성취한 것이 많은 만큼 느꼈던 허무함도 컸었을까. 삶에 대한 허무함과 복잡한 삶에 대한 진절머리가 가사에서 여러 번 표현된다.

 

Does it always gotta, does it always gotta

항상 꼭, 항상 꼭 그렇게

Gotta be so complicated? (Ooh, ooh, ooh, ooh)

복잡하게 살아야만 할까?

    - Complicated 中

 

 대중적인 성공까지 얻은 'Good news'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전반부의 노래들을 듣고 내리는 공통된 감상이 있다. 그것은 '마치 맥 밀러가 자신의 죽음을 알고 곡을 쓴 것 같다'라는 감상인데, 실제로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가사가 많다. 그가 죽음을 직감했다기보다는,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진 상태이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해본다. 허물어진 이유가 삶에 여러 복잡한 문제 때문에 생긴 환멸인지, 복잡한 삶에 목매서 힘겨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해탈인지는 내가 감히 판단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Some people say they want to live forever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삶을 누리고 싶다는데

That's way too long, I'll just get through today

그건 너무 길지 않나, 나는 오늘만 버티면 되는데

- Complicated 中

 

Why can't it just be easy?

모든 게 쉬울 순 없는 걸까?

Why does everybody need me to stay?

왜 다들 내가 남아있길 바라는데?

......

Can I get a break?

나 좀 쉬게 해줄래?

I wish that I could just, get out my goddamn way

그냥 내 식대로, 이곳을 떠나고 싶네

- Good news 中

 

 이전 작보다 [Circles]는 프로덕션 측면에서 많이 덜어낸 느낌이 가득하다. 앨범의 마무리 역할을 맡은 프로듀서 존 브리온도 기존에 맥 밀러와 했던 작업에서 굳이 많은 것을 더하려 하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맥 밀러의 보컬은 여백의 미 그 자체를 보여준다. 노래 마디 사이사이의 공백을 최대화하면서 악기들과 조화를 해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가사가 무거워도 듣기 편하다. Love의 'Everybody's gotta live'를 리메이크한 'Everybody'는 리메이크 곡임에도 불구하고 가사의 분위기와 내용이 나머지 곡들과 조화를 이룬다. 'Everybody'는 전반부와 후반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후반부의 조금 더 편안한 무드로 청자를 이끈다.  

 

Saw a blind man standin' on the corner, baby, yeah

길모퉁이에 서있는 장님을 본 적이 있는데

And he couldn't hardly tie his shoes, yeah

신발 끈도 하나 제대로 묶지 못하면서

Harmonica and guitar strapped around his neck

목에 멘 기타와 하모니카로

But he sure could, he sure could play the blues

연주하던 블루스는 왜 그리 좋던지

- Everybody 中

 

'Everybody' 원곡. Love - Everybody's gotta live

 'Hand me downs', 'That's on me', 'Surf'를 포함한 후반부 트랙들은 어떤 특정 대상에게 말을 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후회와 반성도 있고, 지금의 순간에 대한 감사함도 있다. 후반부의 트랙들의 분위기와 가사는 그의 죽음 때문인지 슬프게만 다가오지만, 따뜻하고, 단순하다. 특히나 후반부에서 주는 감흥은 전작인 [Swimming]을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암울한 분위기의 [Swimming]을 자칫하면 고통을 힘겹게 견디는 앨범으로 압축할 수도 있지만, [Circles]는 그 고통마저 그가 그냥 받아들였음을 확실히 해준다. 이런 내용이 [Swimming]에 없었던 게 아니다. 단지 [Circles]로 더 명확해졌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두 앨범은 상호보완적이다. 집착하는 목표가 없는 수영이 곧 그의 목적이었다. 마지막 곡 'Once a day'는 마지막 인사와 같이 느껴진다. 먼 미래를 말하지 않고, 그가 보낸 하루를 말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차근차근 유유히 헤엄치며 더 살았다면 좋았겠지만. 그것 역시 내 욕심이지 않을까. 사후세계를 믿지 않지만 맥 밀러를 생각하면 이 모든 게 끝난 후에 나타나는 편안한 어딘가가 있었으면 싶기도 하다. 

 

I'm thinkin' maybe I should thank you

생각해보니까 너한테 고마워해야 할 것 같아

Oh baby I should buy you another round

그런 의미로 한 잔 더 사야 할 것 같아

- Hand me downs 中

 

Once a day, I rise

하루에 한 번, 일어나

Once a day, I fall asleep with you

하루에 한 번, 너와 함께 잠들어

Once a day, I try, but I can’t find a single word

하루에 한 번, 난 도저히 한마디도 할 말을 찾지 못해

- Once a day 中

 

 

 우리는 삶이 곧게 뻗은 직선인 것처럼 살지만, 가끔씩은 많은 게 바뀌어도 다시 돌아온듯한 느낌을 받는다. 삶이 진짜 직선이라면 태어나는 게 출발이고 죽는 게 도착일 텐데. 죽음은 또 우리가 향하고자 하는 곳은 아니니깐. 죽고 나면 어떻게 되는지 무교인 나는 힌트조차 없으니깐. 죽기 전까지 멈출 수 없겠지만, 또 어디를 갈려고 멈추지 않는 것 같진 않고.

가사 해석 : 힙합엘이

RIP M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