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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맨

데자와 리뷰.

※주의 : 집 앞 세븐일레븐에 데자와 안팔아서 굉장히 화난 상태로 쓰는 글

 

 나는 데자와를 좋아한다. 아는 사람들은 아는 데자와에 대한 나의 애정에 간혹 누군가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는 한다. 나의 순수한 애정을 인정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구심을 품는 이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할 정도로 난 친절하다. 그럼 설명 들어갑니다잉. 데자와를 좋아하는 이유 첫 번째. 맛이 있다. 이 기본적인 요소도 갖추지 못한 음료들이 팽배한 현 음료시장에 안타까운 마음을 표한다. 두 번째. 고급진 디자인. 클래씩함이 느껴진다. 고상한 폰트가 입맛을 돋군다. 마지막으로 내가 데자와를 홀짝홀짝 마실 때, 나를 보고 열 받아하는 당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난 희열을 느낀다.

 

 

일단 캔색깔부터 맛있어

 

 

 내가 데자와를 좋아한건 언제부터였을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고3 무렵이었을 것이다. 도서관 휴게실 자판기 하단 칸에 있던 데자와의 가격은 단돈 800원. 당시만 해도 주류가 아니었던 '밀크티'를 좋아하던 나에게 '로얄 밀크티'가 적힌 데자와는 싸고 매력적이었다. 800원인데 밀크티인 데다가 로얄 하기까지 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바로 짤짤이 투입.

 

 솔직히 첫 맛은 그저 그랬다. 그래도 지금껏 300원짜리 핫초코나 아이스티 뽑아먹었는데, 500원 더 써서 밀크티? 나쁘지 않았다. 묘하게 중독되는 맛이었다. 보통 중독은 처음이 강렬하다. 그리고 처음의 그 강렬한 자극이 그다음부터는 덜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중독되면 더 강렬한 것을 찾거나, 더 많은 용량을 찾거나, 혹은 더 자주 찾게 된다. 하지만 데자와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점점 더 익숙해진다. 난 맛이 익숙해지는 것은 질리는 것과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데자와는 익숙해져야 맛있다. 나를 비웃던 친구들은 하나 둘 자판기에 800원을 넣기 시작했고, 난 그때 이 음료의 가능성을 봤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진

 

 

 대학생이 되었고, 나는 기숙사에서 생활했었다. 편의점에 가는 횟수가 늘었다. 데자와는 대부분의 경우 2+1 행사를 했다. 한번에 3개씩 샀다. 하지만 간혹 행사를 안 하는 경우에는 무려 한 개에 1200원이었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는 아예 데자와를 팔지 않았다. 화가 난 나머지 인터넷으로 30캔을 주문했다. 공용 냉장고에 넣어놨다. 공강 시간에 잠깐 넣어둔 초코에몽은 잘도 훔쳐가던 놈들조차 손대지 않았다. 데자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데자와를 건드리지 않는 지성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학교 1학년 시절 긱사. 나와 같이 살았던 룸메 형은 보살이셨던걸까?

 

 

 데자와는 차가운 데자와, 따뜻한 데자와로 나뉘어져 있다. 편의점 온장고에 있는 따뜻한 데자와는 겨울에 손난로의 기능을 하며, 집에 도착해서는 미지근한 상태로 마실 수 있다. 정말이지 장점이 끝이 없다.

 

 데자와를 불호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음료는 맛이 없다고 한다. 데자와는 기본적으로 덜어냄의 미학이다. 밀크티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맛만 남겨뒀다. 그 이상의 자질구리한 끝 맛 같은 거는 과감히 없애버렸다. 그래서 맛에 공백이 있다. 사람들은 이 공백을 '맛없음'의 근거로 든다. 하지만 이러한 맛의 공백은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더 깊어지고, 결론적으로 밀크티 본연의 맛을 극대화시키면서도 질리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사실 이쯤 되니 나도 잘 모르겠다.

 

 

최고의 유튜브 '오래된 정원'에도 등장. 말 다했다 !

 

 데자와는 내 인생의 많은 부분과 함께한 뜻 깊은 음료다. 부디 망하지 않기를 기원한다. 데자와가 무시받고 평가절하 당하는 이 참혹한 시대를 잘 견디고 넘어가 부디 가까운 미래에는 재평가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누군가 나에게 남은 인생 동안 데자와와 콜라 중 한 음료만 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묻는다면, 난 한치의 아쉬움과 부끄러움 없이 콜라를 고르겠다. 코카콜라로. 오늘도 사실 집 앞 세븐일레븐에 데자와 없어서 미련 없이 바로 콜라 고름. 그리고 이 글은 맥주 마시면서 썼음.

 

 

 

 

 

 

 

오비라거 처음 먹어봤는데 맛있드라

 

  날씨가 다시 추워지고 있다. 쌀쌀한 겨울, 내일은 따-땃하고 맛 좋은 데자와를 시도해보는 것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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